Annapurna Trekking - Day 6

깊은 산중이라 그런지 아침 여섯시가 되어도 깜깜하다.
알람에 깨어서도 선뜻 일어나지 못하고 뒤척이며 강선생님과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사실 추운 날씨에 침낭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은 것도 한몫 거들었다.
이대로 퍼졌다가는 오늘 일정에 차질이 있을거 같아 따뜻한 침낭의 유혹을 뿌리치고 차가운 바깥 공기속으로 나섰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걷혀있다.
이대로라면 오늘 지나칠 MBC에서도 마차푸차레를 깨끗하게 볼 수 있고 ABC에서도 설산에 둘러싸여 히말라야 고봉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간단히 아침을 들고 롯지를 나서자 롯지 뒤편으로 오늘 걸어갈 골짜기와 함께 저 멀리 빛나는 설산이 보인다.
아침 햇빛을 받아 그야말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지난 닷새간 비를 맞으며 걸은 보상을 오늘 다 해주려나?



오늘 하루도 900미터를 치고 올라가야한다.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것이 이미 3200미터 고지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고산증이 발생하는 고도 위에서 900미터라...
남미에서 고산증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겁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산소의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천천히 걷기로 마음 먹었다.



전날 ABC까지 간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다.
대규모의 한국인 그룹만도 서넛은 만난 것 같다.









산길의 묘미는 뒤돌아보는 것에 있다고 하지?
그동안 비에 쫓겨 여유도 없이 올라왔는데 오랜만에 맑은 하늘 아래서 걷다보니 뒤를 돌아 볼 여유도 생겼다.
어제 그제 아랫쪽은 비가 내렸지만 윗쪽은 눈이 내렸나보다.
암벽에는 희끗희끗 눈이 쌓여 오묘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 너머로 구름이 슬금슬금 넘어오기 시작한다.
불길한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고 싶지만 산은 욕심 낸대도 트레커의 운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차분히 페이스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데우랄리에서 MBC까지 약 두시간이 소요된다고 해서 걸음이 느린 나는 그 이상 걸릴꺼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두 시간 만에 MBC에 도착했다.
본격적으로 설산고봉들 속으로 들어와버린 것이다.
바로 눈 앞에 있는 듯 보이는 마차푸차레도 사실은 내 머리위 3000미터 위에 있다.
그럼에도 깨끗한 공기 속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느껴지자 그 규모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차푸차레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



그러나 몸을 반대로 돌리면 거기는 또 안나푸르나가 있다.
MBC에서 잠시 숨만 돌리고는 바로 ABC를 향했다.
그리 많이 걷지 않아 안나푸르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자태를 드러내는 것도 잠시, 곧 구름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니 마차푸차레 건너편에서도 구름이 넘어오기 시작한다.
살짝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ABC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내려가는 건 아니겠지?









MBC에서 ABC로 가는 길은 부쩍 숨쉬기 힘들어졌다.
고산증이 겁나 무조건 조심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어느새 구름속에 갇히고 이제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비 보다야 낫지만 눈이 쌓이면 다음 날 내려가는 것이 또 걱정된다.





올라가면 갈수록 쌓인 눈의 두께가 점점 두터워진다.
그나마 좋은 길이라도 올라가기 힘든 고도인데 쌓인 눈 때문에 더더욱 힘들어진다.
막판에는 걸음 떼기도 힘들다.



바로 저만치 ABC입구가 보인다.
막판 스퍼트로 치고 올라가 쉬어버릴수도 있겠지만 그 후에 올 산소저하로 인한 고산증이 무서워 ABC를 눈 앞에 두고도 걸음은 더디기만하다.
결국 ABC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경.
4시간 걸린다는 거리를 5시간만에 올랐다. 그래도 이 정도면 선방한 것이다.



ABC에 도착하자 사방은 온통 구름과 눈보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식사부터 했다.
히터를 켜는 시간은 오후 두시부터.
추위에 지친 트레커들은 이제나 저제나 히터를 켜기만을 기다린다.
시계바늘을 빨리 돌리라는 농담이 그냥 지나치는 농담만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





오후 두시보다는 조금 이른 시간에 히터를 켜줘서 하릴없는 기나긴 오후일과는 식당에서 시작되었다.
바깥은 눈보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어 그냥 식당에서 시간을 죽이는 수 밖에...
가끔 구름이 거짓말 같이 걷혀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일부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잠시일 뿐.
그리고 그다지 또렷이 보이지도 않는다.





ABC는 숙소가 적어서 오후 2시 이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숙소 잡기도 힘들다고...
우리야 일찌감치 도착해서 문제없이 방을 잡았지만 늦게 도착하면 다시 MBC로 내려가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에도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에도 ABC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도미토리 방이 있어서 묵어갈 수 있었지만 요행을 바라고 그 시간에 ABC까지 오르는 것은 다소 무모한 행동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설사가 시작된 것이 아무래도 장염에 걸린 것 같다.
길거리 음식이나 위생적이지 못한 롯지 음식을 계속 먹어온 것이 아무래도 세균성 장염을 부른 것 같다.
아무쪼록 하산때까지 문제가 없어야할텐데...
날씨에 건강상태에 대한 걱정으로 잠자리가 그다지 편하진 않다.
게다가 방 안 온도가 영하 5도.
담요를 하나 더 빌려 침낭 위에 덮긴 했지만 그래도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일본에서 사 온 핫팩까지 껴안고 겨우겨우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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