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ub Med
간밤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끙끙 앓으며 식체와 씨름하고는 아침이 되어 초췌한 모습으로 늦으막이 일어났다.
약을 먹긴 했지만 아직은 차도가 없다.
이럴땐 죽이나 먹고 쉬어야겠지만 조식으로 나온 뷔페식에는 맛있는게 너무 많다.
몸이 아프면 식욕이나 없던지...
이놈의 식탐은 안좋은 몸에도 불구하고 사그라들지 않는다.
결국은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정신으로 또 이것저것 집어먹고 거북한 속을 부여잡는다.
일단 한국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취했고 보라보라 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쉬는 것 뿐이다.
어쩌면 카메라가 고장을 일으킨 것도 여기서는 사진은 잊고 그냥 재미있게 놀아라고 배려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제 오전에는 카야킹을 했는데 오늘은 스노클링을 해야겠다.
오전에는 간단히 리조트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오후에는 본격적으로 보트를 타고 스노클링 사이트로 갔다.
맑은 남태평양 바닷물에서의 스노클링은 정말 눈이 다 시원하다.
물속에는 갖가지 물고기가 무리지어 다니고 산호초와 말미잘이 모양을 뽐낸다.
수중카메라가 아쉬웠다.
스노클링 입수전에 조교가 한 가지를 가르쳐준다. 초보 다이버와 고수 다이버의 차이를...
초보 다이버는 물고기들의 이름을 안다고 한다.
고수 다이버는 물고기들이 다이버의 이름을 안다고 한다. ㅎㅎㅎ
그런데 배에 전문 사진사가 타고 있다. 그러면서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스노클링에서 돌아와 내려서는 몇가지를 물어봤다.
자기는 클럽메드 직원이고 디지털 파라다이스라는 사진관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며 내 고장난 카메라를 봐주겠다고 한다.
내 카메라를 들고 사진관에 들어갔더니 그곳엔 대여섯대의 DSLR 카메라와 네대 정도의 맥으로 전문 디지털 사진관이 차려져 있다.
디지털 파라다이스에서는 리조트의 모든 액티비티에 동행해서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손님들이 찾아오면 CD등에 카피를 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직원은 비디오 촬영자이자 관리자로 보이는 백인 아저씨와 사진 촬영을 담당하는 동양인 아저씨 두 명이었다.
처음엔 카메라를 살펴보더니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알면 더 이상하다 ^^;
카메라를 본 김에 DSLR을 렌트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러니 난색을 표하면서 자기네는 조그마한 컴팩트 디카만 대여해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것이 익서스 시리즈의 컴팩트 디카다.
내가 익서스를 들여다보고 메뉴얼 기능이 없어 이런 디카로는 곤란하다며 한숨을 쉬다가 자꾸 SLR쪽에 눈길을 주자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300D를 들어보인다.
이 정도면 어떻겠냐고...
내가 사진을 시작할 때 처음 사용한 카메라라며 손에 익숙하다고 하자 300D를 내어준다.
번들을 빼내고 시그마 18-200렌즈를 마운트해서.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거듭하고는 카메라를 메고 리조트를 돌기 시작했다.
겨우 하루 사진을 못찍었을 뿐인데... 사진을 찍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줄 미처 몰랐다.
가끔 디지털 파라다이스의 사진사 아저씨와 마주치면 좋은 사진 찍었냐며 물어오고 그러면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사진 잘찍는다며 추켜세워주신다.
여행을 준비하며 펜탁스의 수동카메라로 필름바디를 한 대 준비해갈까 생각했지만 짐이 많다보니 포기했었다.
이런 일에 대비해서 아날로그를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디지털 세상이 편안함을 주긴 했지만 약간만 문명사회에서 벗어나면 대책없는 것을 잊고 있었다.
다음날 체크아웃 시간이 다되어 찍은 사진들과 노트북을 들고 사진관을 향했고 데이터를 노트북으로 카피했다.
카피하면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더니 몇몇 사진에서는 오호~ 하면서 감탄해준다.
1기가 가까이 되는 데이터를 카피하다보니 시간이 좀 걸려서 탄력받은 김에 지금까지 찍은 사진 중 잘 나온 몇개를 같이 보여줬다.
사진을 다 보여주자 아빠백통(Canon EF 70-200 F2.8 IS)렌즈가 물린 5D를 들어보인다.
내가 이렇게 사진 잘 찍는 줄 미리 알았다면 이걸 빌려줬을거라며...
DSLR은 컴팩트디카보다 대여료를 더 받을줄 알았는데 그냥 같은 비용으로 계산해준다.
하루 5만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사진은 그보다 더 큰 값어치를 한다.
나로서는 원칙을 떠나 DSLR을 빌려준 그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카메라를 빌릴 때 잘 말하고 내 사진들을 미리 보여줬다면 5D를 사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무거운 카메라보다는 작고 가볍고 손에 익은 300D가 나에겐 더 잘 맞았다.
체크아웃하고 떠날 때 또 다른 액티비티 촬영하러 나가던 동양인 사진사 아저씨가 나를 보고 "Good Photographer"라며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것도 그 분야의 프로에게서라면 더더욱.
이왕이면 여기서 일할 수 있겠냐고 물어볼걸 그랬다. ^^;
거의 포기했던 보라보라 리조트 사진을 건질 수 있어 너무도 기분 좋게 보라보라섬을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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