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shing Tuna

새벽에 모기에 뜯긴 곳이 가려워 잠이 깨긴 했지만 오랜만에 욕실이 딸린 싱글룸에서 그것도 킹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히 자다보니 기분이 다 개운하다.
8시가 다 되어 일어나 방문의 커튼을 젖히니 주인아저씨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인사를 한다.
"Oh! My friend!" - 여기서 Oh는 내 이름이다 ^^;
오늘 낚시를 가기로 한 약속 때문에 먼저 깨울수도 있었을텐데 내가 일어나기만 기다리고 계셨던거다.
식당으로 데려가 바게트와 커피 등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저녁은 타히티식이었지만 아침은 프랑스식이다.



잠시 기다리자 저만치서 보트가 다가온다.
식당 바로 앞이 선착장이다.
간단히 선크림과 카메라만 챙겨 나오자 내 점심이라며 바게트와 물, 과일 등을 챙겨주신다.
주인아저씨도 같이 가는 줄 알았는데 나만 배에 타게 되었다.
타히티를 찾은 한국 손님을 위해 특별 이벤트를 마련해주신거다.





배에는 주인아저씨의 아들인 선장과 그의 아들, 그리고 선원 둘이 있다.



배가 떠나자 바다에서 본 자기네 숙소 사진을 찍어달라고 주인아저씨가 부탁한다.



타히티 주위는 라군(환초)으로 둘러싸여있기 때문에 뱃길이 따로 나있어 연근을 항해할 때 주의해야한다.
라군의 정체는 나중에 별도로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이 라군 덕분에 파도의 위력이 죽어서 해안에는 파도가 거의 치지 않는 잔잔한 바다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수영이나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최적의 조건이 된다.







배는 어느새 섬에서 저만치 멀어져있다.
어군탐지기는 따로 필요치 않다. 망원경 하나면 충분하다.
망원경으로 물고기가 보이냐고?
망원경으로 갈매기는 보인다.
갈매기가 있는 곳은 멸치같이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작은 물고기는 또한 참치와 같은 큰 물고기의 밥이기도 하다.
그러니 갈매기가 모여있는 곳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아래 갑판에서 사진을 찍고 있자니 위의 조타함교에서 선장이 여기가 전망이 더 좋다며 올라와보라고 한다.
확실히 위쪽이 전망은 더 좋다.
저 멀리 육안으로도 갈매기떼가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물고기가 모여있는 곳에 배가 다가가면 물고기는 갈매기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배 아래로 모인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참치도 배 가까이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작은 고기가 많을 때는 밑밥이나 미끼가 필요없다.
그냥 전통방식으로 만든 허름한 루어라도 드리우기만 하면 참치가 달려온다.





갈매기를 보긴 했어도 백사장에서 떨어진 음식 찌꺼기나 줏어먹고 사람이 던져주는 새우깡이나 집어먹는 모습만 봐서 닭둘기처럼 되어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여기 갈매기는 정말 살아있는 갈매기다.
바람을 타고 활강하다 솟아올라 수직으로 내려꽂혀 물속으로 들어가 고기를 잡는다.
고기가 많은 곳에서는 그냥 물위에 떠다니며 지나가는 물고기를 낚아채 잡아먹는다.
너무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다.



갈매기의 모습에 매료되어 좀 더 자세히 찍으려고 망원렌즈로 바꿔끼우는데 어느새 낚시 네개에서 차례로 참치가 달려올라왔다.
첫물부터 대박이다.
아래로 내려가보니 어느새 다섯마리.
원양어선에서 잡는 1미터짜리 참치를 생각했는데 여기는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래도 족히 3~40cm는 넘어가는 놈들이다.
그러는 사이 또 서너마리가 낚여 올라왔다.





낚아올리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아래는 전쟁터였다.
참치가 워낙에 힘과 생명력이 좋다보니 갑판에 달려올라와서도 난동을 부린다.
그래서 낚아 올리자마자 몽둥이로 대가리를 후려쳐 기절을 시킨다. 한방에 잠재우지 못하면 또 퍼득거리기 때문에 제대로 후려치는데 피가 사방에 튄다.
심약한 사람은 차마 눈뜨고 못볼 광경이다.
그러나 사방에 튄 피와 참치가 흘리는 피를 바닷물로 씻어내리면 참치는 너무도 찬란한 은빛을 내며 나란히 누워있다.



일단 잠잠해진 참치들은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완전히 숨통을 끊는다.
아래갑판에 계속 있다간 작업에도 방해될것 같고 계속 보고 있기도 부담스러워서 다시 위로 올라갔다.
그 사이에도 참치가 하나씩 꾸준히 달려올라왔다.







옆에 우리와는 달리 작은 배가 또 참치낚시를 하고 있다.
이렇게 낚시를 나온 배들끼리 서로 무전을 주고 받으며 지금 어디가 물때가 좋다는 정보도 주고 받는다.
헛! 그런데 저 배에 타고 있는 아가씨도 매력이 장난아니다 ^^;











참치가 낚시를 물어서 낚여올라오는 과정까지의 3연속 샷.
처음에 입질이 들어오면 팽팽하게 좌우로 헤엄치며 버티지만 이쪽에서도 힘으로 잡아 올려 낚아올리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요령 이딴거 필요없다. 그냥 줄을 손으로 잡고 힘으로 끌어 올린다. ^^;



사진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선명한 색을 낼까 싶을 정도로 또렷한 모습이다.
내가 찍었지만 꼭 합성같다 ^^;

그러다 "루말릭!"이라며 모두들 들뜨고 긴장하기 시작한다.
참치잡이용 대나무 낚시가 아니라 튼튼한 릴 낚시에 줄을 두줄 세줄 치더니 아까 잡은 참치를 한마리 통채로 미끼로 걸어 띄운다.
저 큰 참치를 미끼로 쓸 정도면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인가 보다.
미끼로 건 참치를 이리저리 흔들어 입질을 유도해보지만 반응이 없다.
그렇게 2분여를 기다리다 낚시줄을 거두어 들인다.
뭐냐고 물어봤더니 루말릭이라며 코끝을 길게 늘여 보인다.
아... 청새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사투를 벌여 낚아올린 그 물고기!!!
어릴적 어린이용 백과사전에서 청새치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푸른 바다에서 수면위로 튀어오른 그 모습은 저게 정말 물고기가 맞을까? 무슨 풍선으로 만든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큰 모습이었다.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가 사라진 것이다.
무척 아쉽다.







그런데 초장끗발이 개끗발이란 말이 여기도 통하는지 시간이 갈수록 처음만큼 입질이 오지 않는다.
갈매기가 있는 곳에서 두어바퀴 천천히 선회를 하다가 입질이 없으면 가까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낚시꾼도 포인트 지역에서만 낚시를 한번씩 튕겨주며 입질을 유도하고 이동할때는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쉰다.
입질이 통 시원찮을 경우엔 한번씩 작은 물고기를 썰어 미끼로 던지기도 한다.



캡틴이 배를 운전하는 모습을 찍어주겠다며 조타석에 앉아보라 한다.
실제로 운전하지는 않고 그냥 설정샷 ^^;





무전으로 어느 지점에 포인트가 났다고 하자 전속력으로 달려가기를 수차례.
지루한 이동을 몇 번 하다가 더 이상 입질이 없자 오늘의 낚시는 접게 되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주인아주머니가 싸주신 빵과 과일이 있었지만 같이 들자고 해서 꺼내지 않고 합석했다.







점심식사는 단촐했다.
참치캔, 콩 통조림, 토마토 페이스트를 양동이에 그냥 부어 휘휘 저어 섞어서는 바게트빵을 찍어먹는 것이다.
솔직히 처음 그 섞어놓은 정체불명의 음식물을 보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거의 음식물쓰레기의 모습에 가까우니깐... ^^;
그래도 이런데서 반찬투정을 할 수도 없고 그들은 늘 먹는 음식인데 차마 싫은 내색을 할 수도 없어 아무렇지 않은 듯 바게트를 뜯어 눈 딱감고 찍어 먹어봤다.
썩 맛있다 할 순 없지만 의외로 먹을만하다.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점잖게 먹는다면 나름 괜찮은 음식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은 아니다.
명색이 낚시인데 회도 안떠먹냐고 생각하는 낚시꾼도 분명 있을 터!!!
여기서도 갓 잡은 참치를 회를 떠 먹는다.
문제는 우리나라 같은 초고추장이 없다는 것.
회를 뜨는 모습도 영 어설프다.
거의 깍뚝썰기로 썰어낸 참치 고깃덩이를 바닷물에 씻어-우리나라 회 매니아가 보면 기겁을 할 모습이다- 이것도 양동이에 담는다.
그리고 라임 두어개의 즙을 짜 넣고 소금을 뿌려 적당히 간을 해서 집어먹는다.
새콤한 라임향과 적당히 짭쪼름한 맛이 갓 잡은 참치 살의 쫄깃한 맛과 어우러져 의외로 먹을만하다.
그러나 제대로 썰어낸 회와 초고추장이 간절히 생각난다.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뭍으로 돌아간다.
허영만의 '식객'을 보면 바다 밥을 같이 먹으면 같은 뱃사람이라던데 나도 뱃사람이 된것인가? ^^;
숙소에 들어서자 오늘 잡은 참치 한손과 함께 내려준다.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는 오늘 참치는 많이 잡았냐? 직접 낚시는 해 봤냐? 재미있었냐? 멀미는 안했냐? 이것저것 많이 물어온다.
배에 태워보내고도 걱정이 많으셨나보다.

원래 멀미는 거의 하지 않는 체질이긴 하지만 용케 멀미를 하지 않고 잘 버텼다.
일기예보에서 먼바다 2~3미터의 파고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뭍에서 겨우 2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서 파도가 그렇게 높은줄은 몰랐다.
파도가 보통 1~1.5미터 정도는 되어보였고 간혹 큰 파도를 만나면 거의 차를 타고 고개를 올라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시운전을 몇번 나가봤지만 길이 200미터는 기본으로 넘어가는 배들만 타다보니 파도를 실감 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먼 바다의 파도를 느낄 수 있었다.
멀미에 약한 사람은 함부로 덤벼들기 힘든 이벤트였다.

하루종일 뙤약볕에 노출되어 미처 선크림을 바르지 못한 곳은 벌겋게 익고 몸도 노곤해서 샤워를 하고 두어시간을 늘어지게 잤다.
어둑해질무렵 일어나 식당으로 갔더니 주인아저씨가 한국에서도 생선을 날로 먹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자 소스는 어떻게 먹냐고 물어와서 초고추장 만드는 방법을 대충 설명해줬다.
그걸 만들 수 있겠냐? 재료는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오는데 문득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구입한 고추장이 생각난다.
그렇지 않아도 처치곤란이었는데 잘됐다.
지금 만들 수 있다고 하자 오늘은 피곤할테니 그냥 쉬고 내일 먹자고 하며 "Korean Sashimi"라며 무척 기대를 한다.
어제 저녁엔 레몬즙과 다진 쪽파, 소금으로 간을 한 이태리식 회도 맛봤는데 그다지 당기지가 않았다.
여기에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지만 일본인들은 몇 번 왔다고 했는데 그들이 일본식 회는 맛보여줬나보다.
암만 그래도 한국의 초고추장 맛만 할까.
나 역시 남태평양의 지상 낙원에서 만나게되는 한국식 회가 기대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랍스터였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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