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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8 Auckland

Auckland

필자는 대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여행에 한해서다.
대도시란 곳이 원체 어딜 가도 비슷한 모습에 그만의 특색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이나 다닐까 도통 할게 없다.







오클랜드는 전형적인 대도시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과 빌딩 숲, 길거리에 널려있는 상점가와 음식점들, 극장과 간혹 보이는 공원들...
뉴질랜드에서 교통정체라는 것을 몰랐는데 고속도로에서 오클랜드에 들어가는 길이 정체되는 바람에 1시간 이상 더 소요되었다.
버스의 통로 건너편에 앉은 막 사춘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여자애 둘은 처음 상경하는 모양이다.
이런 모습이 신기한지 차창에 바짝 붙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을 보는데 정신이 팔렸다.
한동안 뉴질랜드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은것 같았는데 갑자기 다시 숨이 막혀오려고 한다.
6시에 도착하기로 되어있던 버스는 7시가 넘어서 깜깜해진 후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더욱 막막해진다. 숙소인 유스호스텔까지 어떻게 찾아간다?
론리플래닛을 꺼내들고 지도를 다시 짚어보지만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잠시 서 있자니 옆에서 한국말이 들려 우리말로 길을 물어 찾아간다.
지도상으로 얼마되지 않는 거리같아서 걸어서 갔더니 한참이 걸린다. 대도시는 언제나 이랬다.
앞뒤 좌우로 맨 짐들의 무게로 인해 짜증이 다 나려고 한다.

숙소는 더욱 사람을 갑갑하게 만든다.
리셉션의 스텝은 뒷사람이 무거운 짐을 메고 기다리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지 앞의 사람 볼일이 다 끝난게 분명한데 한참 담소를 나눈다.
스텝이 "How are you?"라고 물어오자 거침없이 "Not so good."이라는 대답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래도 왜냐고 묻지도 않고 신경도 안쓰는 눈치다.
숙소의 구조는 카드키가 없으면 로비에 조차 들어설 수 없다.
8인실의 방은 비좁고 창문이라곤 천장에 거의 달라붙다시피 한 30cm정도가 고작이다.
환기가 안되어서인지 청소를 안해서인지 사람들의 체취가 가득차 불쾌하다.
여타 호스텔의 주방의 선반에는 돌아가는 여행객들이 남겨둔 Free food(=comunal food)로 가득차 하루 정도 묵는 여행객은 굳이 먹을 것을 사지 않아도 되는데 비해 여기는 Free food라는 꼬리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오클랜드에 있는 두 곳의 유스호스텔 중 여기가 낫다고 추천을 해서 여기 묵은 것인데 도저히 정이 가지 않는다.
숙소에 머물러있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카메라와 삼각대를 둘러메고 나섰다.













확실히 대도시는 야경이 좋다.
그래도 긴 버스여행에 지치고 거리엔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도 주정꾼들로 넘쳐나 오랫동안 사진을 찍기는 곤란했다.
사진을 찍고 있자니 여기저기 우리말이 많이 들려온다.
오클랜드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퀸즈스트리트에는 아예 한 블록 정도가 한국식당, 상점으로만 이루어져있을 정도니...
오랜만에 한식당에서 김치찌개 백반을 시켜 땀흘려가며 우리식으로 저녁을 먹고나니 여기가 뉴질랜드라는 사실조차 잊혀진다.

다음날은 금요일. 하루종일 여행준비로 할일이 많다.
아침일찍 짐을 꾸려 코인로커에 넣어두고 9시 경 숙소를 나섰는데 대도시 오클랜드 답지 않게 한산한 것이 뭔가 수상하다.
오클랜드의 중심가인 퀸즈스트리트와 빅토리아스트리트를 걷는데 거리에 사람이 없다.
타히티의 리조트를 예약하려고 사무실에 갔더니 문이 잠겨있다.
마침 사람이 나와서 물어보니 오늘은 공휴일이랜다.
아... 부활절 휴일이래나?
다음날인 토요일엔 문을 열어도 오늘은 모두들 쉰댄다.
더 기가 찰 노릇은 오늘 밤 날짜변경선을 넘어가기 때문에 나에게는 타히티에서 맞는 내일도 4월6일이고 타히티 역시 공휴일에 걸리는 것이다. ㅡ.ㅜ
날짜를 맞춰도 어쩜 이렇게 절묘하게 맞출 수 있을까?



공휴일을 맞은 대도시는 죽은듯 조용하다.
광고에서나 볼 수 있는 텅빈 도시를 내가 걷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론리플래닛이 싸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서점을 찾았지만 오늘은 쉰댄다.
할 일이 수첩에 빼곡히 적혀있었지만 이 대도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행인것은 식당과 카페는 문을 연다는 것이었다.
갈곳이 없어 스타벅스에 죽치고 앉았다.
무선인터넷이 되길래 하루짜리를 끊어서 하루종일 인터넷이나 하기로 했다.

점심때가 되어서 어제 저녁식사를 한 식당을 다시 찾았다.
역시 한가했다. 손님은 나 하나...
갈비탕을 시켜들고 주인내외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계일주를 한다고 이야기 했더니 관심을 많이 보이며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온다.

한국인이 많은 도시에서는 한국인이 워낙에 흔하다보니 한국인 여행객에게도 그다지 살갑게 대하지 않고 그저 손님으로 밖에 대접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나도 그들에게 그다지 마음을 열지 못하고 그냥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러다 할일이 많은데 공휴일이 걸려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한국인이 하는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열기 때문에 거기 알아보면 웬만한 건 할 수 있을꺼라고 한다.
그래서 기념품점 하나를 소개받아 갔다.

그동안 여행하며 모은 자료들과 기념품 등을 한국으로 보내야하는데 택배사들이 모두 쉬니 천상 좀 더 안고 다녀야할 판이었다.
그런데 기념품점에 가니 거기서 택배접수도 받아주는 것이다.
뉴질랜드가 건강식품도 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몇가지를 사서 함께 한국으로 부쳤다.
거기서도 어쩌다 세계일주중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더니 관심을 보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하게 되었다.
확실히 세계일주가 흔한 일은 아니다보니 관심의 대상이 되나보다.
건강식품을 꽤 사기는 했지만 그다지 큰 금액도 아니고 어르신들 단체 관광객들에 비하면 그다지 큰 고객은 아닐터인데 세계일주의 프리미엄 덕분인지 이것저것 막 챙겨주시고 오늘 같이 쉬는 날 갈만한 곳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혼자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손님을 대하는 이상으로 환한 웃음으로 배웅까지 받으니 교포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잘못된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소개받은대로 항구쪽으로 내려갔다.
역시나 한산한 분위기였지만 자칫 하루종일 카페에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볼 했는데 잠시 기분전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스타벅스를 찾아 인터넷을 하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의 절반은 우리말이다.
저녁이 되어 또 다시 그 식당을 찾았다.
이젠 얼굴도장을 찍어서 들어서자마자 주인아저씨가 반갑게 맞아주시며 오늘은 뭐했냐는 둥 이것저것 말을 붙여주신다.
내 이야기를 다 들었는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모두 가족들이겠지만- 모두 나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다. ^^;
메뉴판을 갖다주면서, 식사를 갖다주면서 여행은 앞으로 얼마나 남았냐, 나도 평생의 꿈인데 부럽다는 등 모두들 살갑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자 헤어져 아쉽다는 표정까지 지어주신다.
겨우 하루인데 오랜 단골을 보는 마냥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호스텔로 돌아와 락커에서 짐을 꺼내어 다시 완전무장을 하니 뭔가 하나가 허전하다.
식당에서 더워서 점퍼를 벗다가 캠코더 가방을 의자에 걸어뒀는데 깜빡 잊고 두고 온 것이다.
행여나 다른 사람이 들고갈까봐 서둘러 식당으로 갔더니 말을 꺼내기도 전에 웃으며 가방을 건네주신다.
"유스호스텔에 묵는다고 해서 서둘러 뛰어가봤는데 안보이데?"
같은 부산 동향사람이라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동네 아저씨처럼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뉴질랜드에 도착한 첫날 묵은 백패커 숙소의 아주머니도 기억이 난다.
전화로 예약하는데 이름의 영문스펠을 불러줬을 때 제대로 읽는 것을 듣고 혹시 한국인인가 생각은 했는데 도착해보니 역시나 안주인이 한국인이었다.
그때도 주방에서 앞선 여행객들이 남겨두고 간 음식들을 몽창 꺼내어 먹고싶은 거 있으면 다 들라고, 혹시 김치나 라면 필요하면 줄테니 말하라고 엄청 챙겨주셨다.

한인타운의 한국교포들에 대한 나의 나쁜 선입견은 그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했다.
차가운 대도시 속에서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 오클랜드는 나쁜 기억만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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